얼마 전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 펜데믹이다. 코로나 19팬데믹은 생사기로의 위기로 개인을 몰아넣었고, 경제는 엉망진창의 나락으로 떨어져 희망조차 안 보이던 시기가 바로 3~4년간 지속됐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시 고금리와 경기한파의 이중고로 막막한 삶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세계는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경제는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고, 기술은 정말 혁신을 거듭하면서 변화하지 않으면 시쳇말로 미래의 밥줄을 내놓아야 하는 긴박감의 연속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사회·경제를 주도하는 정치집단으로 눈을 돌려 보면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의석수를 가진 집권야당(?)은 지금 당장 30조원이 걸려 있는 K-방산 수출 걸림돌인 수출입은행법을 개정해 주지 않고 발목을 잡아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 흠집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이들은 국가의 경제 살리기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특히 그 당의 대표라는 자는 일주일 중 사흘을 재판장에서 증인과 씨름하고 판사를 무시하는 듯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고도 지지율이 40%에 육박한다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현상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또 어떤가. 그 당의 국회의원이거나 이었던 자들은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광신적인 소위 말하는 ‘개딸’의 환호를 얻어내어 공천 한자리 받겠다고 인성도 철학도 도덕도 다 내팽개치고 있으니 나라의 ‘격(格)’이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정말 부끄러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자 이렇게 되면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는가. 바로 서민들이다. 상류층의 사람들이야 충분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으니 별 탈이 없거나 ‘돈이 돈을 벌어주는 순환고리’에 들어 있으니 그닥 걱정이 없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나날을 버티고 있다. 하늘이 높은 줄 모르는 고금리에, 실질적 가처분소득의 감소에, 인구절벽에 시장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고, 길을 걷는 서민들의 표정은 수많은 걱정으로 비장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우리 서민 앞에 던져진 것이다. [먹고사니즘]보다 지금 현재 더 절실한 말은 없다.
104세 철학자이자 지금부터 시인이 되고자 꿈꾸는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는데 교수님께 철학적으로 여쭙고 싶다. 교수님 먹고사는 문제는요? 그러면 교수님은 칼럼에서 늘 말씀하시듯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해요. 오로지 자기의 눈앞 이득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물러나야 해요!” 라고 점잖게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완주하고 싶다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늘 잘 될 것이란 희망을 안고는 살고 싶은 것이다.
이런 [먹고사니즘]은 멀리 있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다. 내 주변의 기본적인 문제에 정통한 정치인들이 밑바닥 서민의 삶에 밀착하여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이번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뽑혀야 하는 것이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우리 지역 민생해결 [기본기]를 갖춘 일꾼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서민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 줄 알고, 때로는 막걸리 좌판에 앉아 별 것 아닌 거로도 호탕하게 웃을 줄도 알고, 누구라도 손에 들고 온 자그마한 민원이라도 반드시 해결하려고 눈을 부릅뜨는 그런 국회의원이 뽑혀야 한다. 선거만 끝나면 여의도 문법을 바로 배우는 그런 이가 아니라 우리 동네 [먹고사니즘] 문법으로 계속 우리 곁에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정말로 국회의원은 [먹고사니즘] 해결의 기본기가 충실한 일꾼을 뽑아야 함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저도 알고, 어르신도 알고 청년도 아는 그런 선거가 되길 기원해 본다.